1919.3.9 서울에서 독립선언문 (獨立宣言文) 을 입수 (入手) 하여 귀향 (歸鄕) 한 후 (後) 청주농업학교 기숙사 (淸州農業學校寄宿舍) 에서 학생 (學生) 들에게 서울의 독립만세 시위 (獨立萬歲示威) 를 알려주고 동석 (同席) 한 학생 (學生) 들에게 청주 (淸州) 에서도 열광적 (熱狂的) 으로 독립만세 (獨立萬歲) 를 하자고 제의 (提議) 하여 호응 (呼應) 을 얻어 독립선언문 (獨立宣言文) 을 인쇄 (印刷) 하다 피체 (被逮) 되어 징역10월을 받아 미결기간 (未決期間) 을 합산 (合算) 하여 11월간 (月間) 의 옥고 (獄苦) 를 치른 주동자 (主動者) 로서 활동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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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충북 청원(淸原) 사람이다.
청원군 가덕면(加德面)이 고향이고 1919년 당시 경성중앙학교(京城中央學校) 재학생으로 3월 1일 독립선언서를 입수하여 귀향하였다.
3월 9일 청주농업학교 기숙사(淸州農業學校 寄宿舍)로 가서 학생들에게 서울의 독립만세운동 상황을 알렸다.
그리고 청주에서도 독립만세시위를 벌이자고 제의하여 찬성을 얻어 독립선언문과 경고문 등을 제작하고 인쇄하는 등 거사준비를 하다가 사전에 발각되어 일경에 붙잡혔다.
그리하여 이해 4월 9일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형을 선고받고 항고했으나 5월 5일 대구복심법원과 5월 31일 고등법원에서 각각 기각되어 1년여의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韓國獨立運動史(文一民) 174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9卷 252·253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13輯 87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5輯 1101·1102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