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충북 음성(陰城) 사람이다.
1919년 3월 28일 음성군 음성면(陰城面) 음성시장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이곳의 독립만세운동은 3월 18일 천도교인들이 주도한 만세운동이 일어난 후에 전개되었다. 초천리(草川里) 서당에 다니고 있던 김영익이 3·1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상황에서 평소 알고 지내던 정민영(鄭玟永)과 함께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결심하면서 추진되었다.
3월 27일 그들은 우선 서당에 함께 다니던 최만득(崔萬得)·정대영(鄭大永) 등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함께 만세운동을 추진할 것을 권유하여 이들로부터 적극적인 찬동을 얻은 후 거사일을 음성 장날인 3월 28일로 정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지체없이 선언서와 태극기를 인쇄, 제작하면서 거사준비를 차질 없이 진행시켰다.
거사 당일인 3월 28일 오후 4시경 김영익은 서당 동료들과 함께 음성시장에 가서 준비한 선언서와 태극기를 운집한 군중에게 배포하였다. 그리고 김영익이 독립만세를 선창하자 장터에 모인 군중들도 이에 호응하여 독립만세를 고창하고 시가행진을 전개하였다.
그는 이 일로 인해 같은 해 7월 18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으로 징역 4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7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1919. 7. 18. 京城覆審法院)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愛國志士金榮翼先生義烈追慕碑文(1996年 建立)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3卷 62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