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3권(1987년 발간)
충청북도 음성(陰城) 사람이다.
1919년 4월 2일 밤 고향인 삼성면(三成面) 선정리(仙井里) 뒷산에서, 부락민 수십명과 함께 독립만세를 부른 뒤, 약 80여명의 군중을 지휘하여 천평리(泉坪里) 소재 경찰주재소로 달려가 독립만세를 계속 고창하며, 가지고 있던 곤봉으로 시위를 제지하는 일본 경찰(하야중차랑 : 河野重次郞)의 어깨를 내리치며 독립만세 시위를 계속하다 체포되었다. 이해 6월 26일 고등법원에서 징역 1년 2월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도 악랄한 고문의 여독과 일경의 탄압 및 감시가 더욱 심해지자, 수절사의(守節死宜)라는 유서를 남기고 마을 뒷산 버드나무에 목을 매어 자결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5권 108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