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3권(1996년 발간)
강원도 강릉(江陵) 사람이다.
그는 1919년 4월 4일 강원도 강릉군(江陵郡) 강릉면(江陵面) 남대천(南大川)에서 보수축(洑修築) 공사를 마치고 돌아가던 길에 각동 농군과 함께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강릉에서의 만세운동은 기독교 목사 안경록(安慶錄)의 주도하에 강릉청년회원들이 4월 2일 강릉 장날을 이용하여 일으킬 계획이었다. 그런데 거사 전날인 4월 1일에 사전 발각으로써 주동 인물들이 붙잡히는 바람에 만세시위를 일으킬 수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4월 4일 남대천 강가에서 보(洑)공사를 하던 농민들이 공사를 마치고 괭이와 삽, 가래를 들고 만세시위를 일으킨 것이었다. 해마다 초당(草堂)·송정(松亭)·포남(浦南)·옥천(玉川)의 네 마을 농민들은 논에 들어오는 물길을 수리하고 보를 만들고 있었는데, 이 때를 이용하여 최이집과 최진규(崔晉圭) 등이 만세시위운동을 추진한 것이었다.
이 때 만세시위에는 최이집을 비롯한 4개 마을 농민 2백여 명이 농기구를 들고 만세시위를 벌이다가, 일본 경찰과 군대의 탄압으로 해산하고 주동인물이 붙잡혔다.
그는 이 일로 일경에 붙잡혀 1919년 4월 10일 함흥지방법원 강릉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4월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공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임영문화(강릉문화원, 1992) 제16집 112·113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2권 630면
- 매일신보(1919. 4.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