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7권(1990년 발간)
전북 남원(南原) 사람이다.
그는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고향인 남원에서 남원읍 장날인 4월 4일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그후 동년 8월 대동단(大同團)에 가입하여 김재구(金在九)·강경진(姜景鎭) 등과 함께 남원 지방을 중심으로 동단의 조직 확대에 힘을 쏟는 한편 각종 선전물의 배포를 통하여 독립의식을 고취하였다.
대동단은 1919년 3월 말 전 협(全協)·최익환(崔益煥) 등이 전 조선 민족의 대단결을 표방하고 서울에서 결성한 독립운동단체로서, 서울에 본부를 두고 전국 각처에 지단을 설치하였다. 또 동단에서는 당시 사회 각층을 황족(皇族)·진신(縉紳)·유림(儒林)·종교(宗敎)·교육(敎育)·상공(商工)·노동(勞動)·청년(靑年)·군인(軍人)·부인(婦人)·지역구역(地域區域) 등 11개 단(團)으로 분류하고, 이들은 각층의 인사들을 통일·종합함으로써 범국민적 조직을 구상했다.
형갑수 등이 활약한 남원 지단에서는 주로 청년 단원을 근간으로 조직 활동을 벌였고, 이들은 자금을 수합하여 서울의 대동단 본부를 지원하기도 했다.
그런데 1919년 11월 대동단 본부가 주도한 의친왕(義親王)의 상해(上海) 망명계획이 일경에 발각됨으로써 대동단 조직의 전모가 드러나게 되어 동단의 전라북도 지단도 자연 발각되었고, 이로 인하여 그는 1921년 3월 14일 광주지방법원 군산지청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형을 선고받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4권 444·445·446면
- 판결문(1921. 3. 14 광주지방법원)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9권 981·982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3권 541·54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