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3권(1987년 발간)
전라북도 남원(南原) 사람이다.
1919년 4월 4일의 남원읍 장날을 이용하여 방극용(房極鏞)·형갑수(邢甲洙) 등과 함께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그는 당시 사매면 대신리(巳梅面大新里) 구장으로서 이날 정오경, 광한루(廣寒樓) 광장에 모인 1천여명의 시위군중의 선두에 서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남문(南門)을 거쳐 장터로 시위행진을 벌였다.
이날 그가 시위군중을 이끌고 헌병분견소로 행진하여 만세시위를 벌이자 장날에 대비하여 미리 헌병과 수비군 병력을 증원 받아 삼엄한 경계를 펴고있던 일제는 무차별 사격을 감행하였다. 이같은 일제의 만행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으며, 20여명의 주동자들이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결국 그도 체포되어 징역 2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238면
- 판결문(1919. 5. 9 광주지방법원 남원지청)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3권 54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