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황해도 옹진군(瓮津郡)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고, 옥고를 치렀다.
옹진군에서는 서울에서 해주(海州)를 경유하여 3월 1일 아침 독립선언서를 전달받고, 3월 3일 옹진읍 장날에 읍내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주도자 다수가 예비검속 당하여 크게 확산되지는 못하였다. 뒤를 이어 천도교인들이 3월 8일 웅진 읍내에서 천도교 옹진교구장의 지휘로 군민과 함께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고, 3월 13일에도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이에 영향을 받아 웅진군의 각 면에서도 시위가 이어졌다.
오태근이 거주하던 흥미면(興嵋面)에서는 4월 13일과 14일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오태근은 흥미면 안락리(安樂里)에서 600여 명의 군민들을 선도하여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시위 후 체포된 오태근은 1919년 7월 31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高等法院:1919. 7. 31)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2권 324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5집 763~76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