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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공자정보

수형기록
관리번호 9581
성명
한자 金容杓
이명 없음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액자프레임

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국내항일 포상년도 2005 훈격 건국포장
1927년 9월 중순경 전라남도(全羅南道) 곡성군(谷城郡) 옥과면(玉果面) 옥과리(玉果里) 옥과청년회관에서 김재왕(金在旺)에게 권유를 받아 고려공산청년회(高麗共産靑年會)에 참가하고, 정경인(鄭璟人)을 책임자로 하는 ‘담양야체이카’를 조직하여 일본제국주의 지배를 타도하고 조선의 독립을 도모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징역 2년을 받은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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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6권(2006년 발간)

1925년『동아일보』옥과지국(玉果支局)을 운영하던 그는 일제 식민통치의 부당성을 깊이 인식하게 되면서 사회주의 사상을 수용하였다.

단, 조선에서는 사회주의 혁명에 앞서 일본제국주의의 지배를 배제하고 조선 독립을 달성하는 것이 급선무라 인식하면면서, 사회주의 활동에 매진하였다.

1927년 9월 중순 전남 곡성군(谷城郡) 옥과면(玉果面) 옥과리(玉果里) 옥과청년회관에서 김재명(金在明)의 권유로 고려공산청년회(高麗共産靑年會)에 참가하고, 정경인(鄭璟人)을 책임자로 하는 ‘담양야체이카’를 조직하여 일본제국주의 지배를 타도하고 조선의 독립을 도모하기 위한 활동을 펼치다가 체포되어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京城地方法院, 1930. 12. 22)
  •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국사편찬위원회) 별집 제2권 347면
  • 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現代史資料(姜德相, 1972) 제29권 104·138·143면
  • 韓國靑年運動史(鮮于基聖, 1973) 344면
  • 朝鮮社會運動者同盟 發起準備委員會의 動靜에 關한 件(京鍾警高秘 第4625號, 1925. 4. 23), 檢察事務에 관한 기록(2)
  • 한국사회주의운동인명사전(창작과 비평사, 1996) 101면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도움말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순번 성명 이명 출신지 관련사건
1 김용표 - 전라남도 곡성(谷城) 조선민단 강연회사건
본문
1899년 전라남도 곡성군(谷城郡) 옥과(玉果)에서 태어나 보통학교를 졸업했다. 1925년 4월 17일 ‘서울파’ 계열의 전국적 사상단체의 연합조직을 주창하는 조선사회운동자동맹 발기준비위원회 발기준비위원의 1인으로 참가했다. 1925년 12월 동아일보사 전남 곡성 옥과(玉果) 지국장에 임명되었다.1926년 담양노동청년회와 옥과병인청년회(玉果丙寅靑年會) 등을 결성하고 야학을 개설하는 등 문명퇴치 운동과 청년교양 등 농촌계몽운동을 펼쳤다. 1926년 12월 중외일보(中外日報) 옥과지국 기자로 임용되었다. 1927년 7월 30일 전남 옥과 학우회(學友會)에서 농촌계몽운동을 목적으로 강연과 소년 소녀 가극회(歌劇會)를 개최하였을 때 참가하여 감상(感想)을 발표하였다. 1927년 8월 옥과병인청년회 집행위원장 역임 중에 13명과 함께 전남 곡성군 옥과면의 부호 조태환(曺台煥)을 구타한 사건으로 곡성경찰서에 붙잡혔다가 풀려났다.1927년 9월 중순경 전남 곡성군 옥과면(玉果面) 옥과리(玉果里) 옥과청년회관에서 고려공산청년회 전남 책임자 김재명(金在明)의 권유를 받아 고려공산청년회(高麗共産靑年會)에 참가하고, 정경인(鄭璟仁)을 책임자로 하는 ‘담양야체이카’를 조직하여 일본제국주의 지배를 타도하고 조선의 독립을 도모하는 등의 활동을 했다. 1927년 10월 동아일보 담양지국 기자로 임명되었다. 1927년 11월 26일 전남 옥과병인청년회 회관에서 열린 옥과병인청년회 집행위원회에 사회를 맡아 옥과병인청년회의 조직변경에 관한 건, 전남청년동맹지방대회출석대의원에 관한 건, 공산당공판에 관한 건, 노동야학개최에 관한 건, 회원모집에 관한 건 등 안건을 심의, 결의하였다.1928년 3월 7일 중외일보 옥과지국에서 옥과 신간회 지회 창립준비회가 개최되었을 때 옥과면 준비위원 대표로 참가하여 1928년 3월 27일 신간회 옥과 지회 창립에 앞장섰다. 1928년 3월 11일 옥과병인청년회 제3회 정기총회에 참여하여 개회사를 선언하였다. 이 날 옥과병인청년회는 조선청년총동맹의 조직규칙에 준하여 민족진영의 청년을 망라한 단일청년동맹으로 조직을 변경하고 옥과병인청년회는 그 완성을 수행함으로써 최후의 노력을 다한다는 것을 만장일치로 가결하고 임원개편과 동맹창립준비위원 11인을 선정하였다. 이때 김응수(金應洙)와 곡성군 삼기면(三岐面)의 맹원 모집에 대한 담당구역에 배정되었다.1928년 5월 20일 ~ 5월 21일에 광주에서 개최된 전남청년연맹에 참여하여 강종득(姜宗得)·김인수(金寅洙)·장석천(張錫天) 등과 대회준비위원으로 선출되어 6월 9일 담양청년동맹회관에서 예정된 전남청년연맹 정기대회의 대체 방침을 정하였다. 1928년 6월 전남청년연맹 정기총회에 참여하여 신임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28년 7월 광주에서 열린 전남청년연맹 집행위원회에 참여하였다.1928년 8월 ‘제4차 조선공산당 및 고려공산청년회 검거사건’에 연루되어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경찰에 붙잡혔다. 1928년 10월 경기도 경찰부가 경성지방법원 검사국에 보고한 문서 중 ‘공산당관계자가맹동기표(총인원 143명)’에 따르면 조선공산당 가입 동기는 “이민제도(移民制度)에 악감(惡感)을 가져 마침내 공산주의에 공명함”으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일제강점기 동양척식회사의 일본인 이주정책 등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1930년 12월 2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을 받고 1931년 출옥했다. 이후 1932년 10월 동아일보사 옥과지국 기자로 임명되었다.1945년 건국준비위원회 곡성지부 위원, 곡성군인민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1947년 6월 호남대성회(湖南大成會)의 옥과지부(玉果支部) 결성식에 참가했다.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수형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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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번 종류 죄명 처분(주문) 판결기관 판결일 제공
1 인물카드 치안유지법위반 2년 경성지방법원 - 국사편찬위원회

묘소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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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정보 1
묘소구분 묘소명 소재지
국립묘지 대전현충원 대전광역시 유성구
국립묘지 안장자 위치정보 시스템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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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번 종류 시설명 소재지
1 독립유공자 위령탑 전라남도 곡성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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