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전남 해남(海南) 사람이다.
해남군의 3·1독립운동은 4월로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전개를 보이게 되었다.
그는 마산면 송석리(馬山面 松石里)에 살고 있으면서 해남공립보통학교(海南公立普通學校) 학생 김규수(金奎秀)의 주동 아래 동료학생들에게 연락하여 전원의 찬성을 얻어 독립만세운동 계획을 거침없이 추진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1919년 4월 4일 해남면 해남마을에서 그는 해남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을 규합하여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만세시위를 주동하다가일경에 붙잡혔다.
보통학교 재학중인 소년들이 중심이 된 이 해남에서의 제1차 만세시위는 어른들을 각성케하고 분발을 촉구한 바가 컸다.
이일로 인하여 그는 이해 6월 7일 광주지방법원에 장흥지청에서 징역 10월형을 선고받아 공소를 제기하였으나 6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 형이 확정되어 1년여의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1919. 6. 7 光州地方法院 長興支廳)
- 判決文(1919. 6. 30 大邱覆審法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3卷 616·617·618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9卷 291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