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전남 완도(莞島) 사람이다.
1919년 4월 8일 완도읍내에서 김우진(金宇鎭) 등과 함께 만세시위운동을 벌이기로 계획하던 중, 사전에 발각되어 일경에게 붙잡혔다.
보통학교 학생이었던 차종화는 3월 하순경 목포에 갔다가 전국 각지에서 만세시위운동이 벌어지고 있음을 듣고 완도로 돌아왔다. 4월 7일 그는 군내리(郡內里)의 김두일(金斗一) 방에서 친구인 김우진에게 각처의 시위운동 상황을 전하고 보통학교 학생들과 함께 앞장서서 크게 독립운동을 전개하기로 하였다.
이들은 4월 8일에 만세운동을 전개하되 미리 벽보를 붙여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기로 하였다.
4월 7일 오후 9시경, '대한독립만세시작'이라는 벽보가 읍내 곳곳에 붙여졌다. 그런데 이 벽보로 말미암아 일 헌병들에게 시위계획이 탄로되어 차종화를 비롯한 50여 명이 검거되었다.
그는 이 일로 1919년 4월 22일 광주지방법원 장흥지청에서 소위 보안법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7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3卷 623面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9卷 293面
- 判決文(1919. 4. 22. 光州地方法院 長興支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