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경북 칠곡(漆谷) 사람이다.
.1919년 칠곡군 인동면 진평리(仁同面 眞坪里)의 이상백(李相栢)을 중심으로 이영식(李永植)·이내성(李乃成) 등 동지 수명과 함께 독립만세운동을 계획에 참가하였다.
1919년 3월 7일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 학생 이영식은 독립선언서 20매를 가지고 이상백을 찾아와 동지를 모이게 하여 상의하고 태극기를 만들었다.
그는 동리에 독립선언서를 내붙였고 3월 12일 오후 8시 뒷산 마루에서 독립만세를 부른다는 사실을 동리 사람들에게 알렸다.
이날 오후 8시가 되자 동민들은 뒷산 기슭으로 속속 모여들어 그 수는 300명에 달하였고, 그를 비롯한 주동인물들의 선창에 따라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들은 밤이 깊도록 만세를 부르다가 급히 출동한 일군경에 의해 주동인물 8명이 검거되고 강제 해산당하였으나, 그후에도 이들의 저항의식은 더욱 높아갔다.
그는 3월 14일 오후 9시경에 2백 명의 동민과 더불어 뒷산 기슭에서 다시 독립만세를 부르고 시위를 전개하였다.
2차에 걸친 만세운동으로 그는 많은 주동인물들과 함께 일경에 붙잡혔으며 재판에 회부된 인사만도 20명에 달하였다.
그는 이해 4월 2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형을 선고 받아 1년여의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 (1919. 4. 25 大邱地方法院)
- 3·1 運動實錄(李龍洛) 205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5輯 1318∼1321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3卷 388·389·390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