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경북 선산(善山) 사람이다.
1919년 4월 12일 선산읍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선산은 대구와 가까운 지리적 조건으로 일찍부터 3·1운동이 계획되고 있었다. 처음에는 선산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이 주동이 되어 3월 13일에 만세시위를 일으킬 계획이었으나, 교장의 강압에 의해 무산되고 말았다.
이 일이 알려지자 선산 일대의 청년들은 크게 분개하면서 새롭게 만세시위를 추진해 갔다. 이때 박희목은 권오환(卷五煥)·이원길(李元吉) 등과 함께 4월 12일 선산읍 장날에 거사하기로 뜻을 모았다. 그리하여 이들은 만세시위에 필요한 태극기 및 선언서를 제작, 인쇄하는 한편 동지를 포섭해 갔다.
그리하여 거사 당일인 4월 12일 오후 5시 경 박희목은 동지들과 선산읍 장터에서 독립만세를 선창하면서 만세시위를 일으켰다. 이때 장터에 모인 50여 명이 호응하면서 만세시위가 일어났는데, 박희목 등 주동 인물들은 일경의 추격을 받아 붙잡히고 말았다.
그는 1919년 5월 2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으로 징역 10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9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5輯 1378·1381面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