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3권(1987년 발간)
경상북도 선산(善山) 사람이다.
1919년 4월 12일의 선산읍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그는 전국적으로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향인 선산에서는 아직 아무런 계획이 없음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권오환(權五煥)·박희목(朴喜穆)·전용신(田容信)·김의경(金義景) 등과 함께 4월 12일 선산읍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
4월 12일 오후 5시, 그는 이들과 함께 선산읍 시장에 나아가 독립만세를 외치며, 이에 호응하는 50여명의 시위군중과 함께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한 뒤 피신하였다. 그러나 이날 밤 일본 경찰에 의해 체포되었으며, 이해 5월 2일 대구(大邱)지방법원 김천(金泉)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0월형을 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1920년 1월 26일 일제의 잔인한 고문의 후유증으로 가출옥하였으나 결국 2월 20일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3권 464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5권 1459·1460면
- 제적등본(1920. 2. 20 본적지에서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