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손동일은 경북 의성군(義城郡) 비안면(比安面) 동부동(東部洞)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3월 중순으로 접어들면서 3·1운동은 전국적으로 펴져 갔다. 특히 3월 8일 대구 학생들의 의거와, 3월 12일 봉기한 비안 공립보통학교 학생 의거 및 쌍계동 의거는 이곳 농민들을 더욱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다. 3월 12일 비안면 동부동에 사는 김석근(金石根), 임재호(林在虎), 박후도(朴後度), 박홍섭(朴洪燮) 등 애국청년들은 김석근의 집에 모여 전국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독립의거에 발맞추어 이곳에서도 의거를 단행하여 나라의 독립을 쟁취할 것을 맹약하고, 한지로 태극기 120여 개를 만들었다. 한편 이때 군중 약 100명은 동부동으로부터 서부동 시장에 걸쳐 만세를 부르면서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들 양쪽의 시위대열은 서부동 시장에서 합류하여 독립만세를 부른 후 해산하였다.
한편 손동일은 임재호, 박후도, 박홍섭과 같이 김석근 집에서 만든 태극기를 3월 16일 오후 3시 서부동 시장에 모인 약 50명의 군중에게 나누어 준 후 군중들과 같이 태극기를 높이 들고 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위를 전개하고 해산하였다. 이 정보를 들은 이곳 경찰은 그 후 그들 주동 인물을 전원 검거하였다.
시위 후 체포된 손동일은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3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大邱地方法院:1919. 4. 7)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3권 37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