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6권(2006년 발간)
1919년 3월 29일 경남 하동군(河東郡) 진교면(辰橋面) 진교시장(辰橋市場)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을 계획·주도하였다.
그는 정재운(鄭在雲)·정재백(鄭在伯)·이원태(李源泰) 등 동지들과 함께 3월 29일 진교 장날을 이용하여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하고 태극기를 제작하는 등 사전 준비를 하였다.
3월 29일 정오경, 장터에 1,000여 명의 주민이 모이자, 그는 동지들과 숨겨 간 태극기를 주민들에게 재빨리 나누어 주고 장터 한복판에서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이에 호응하여 주민들이 일제히 독립만세를 부르자, 그는 군중 선두에 서서 장터를 누비고 진교경찰관주재소로 행진하여 그 앞에서 만세시위를 벌였다.
이때 일본 경찰이 나와 총검으로 위협하고 주도자를 검거하여 주재소로 끌고 갔다. 이에 분노한 시위군중은 주재소를 포위하고 구금자 석방을 요구하였다. 일본 경찰이 응하지 않자 군중들은 주재소 안으로 밀고 들어갔다. 그러나 하동경찰서에서 지원 나온 일경들이 총검을 휘두르며 강제해산에 나서 군중들은 부득이 해산하고 말았다.
3월 30일 오후 5시경, 1,000여 명의 군중이 다시 진교경찰관주재소로 몰려가 전날 검거된 동지의 석방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군중들의 의기는 충천하였으나, 급보를 받고 하동에서 출동한 일본군 보병이 현장에 도착하여 군중을 구타하는 등 강제 진압에 나서 해산하고 말았다.
이홍식은 이때 체포되어 1919년 5월 31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선고받고 진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4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辰橋面誌(辰橋面誌編纂委員會, 2002) 104·109면
- 하동독립유공자공훈록(추경화, 2000) 311·315면
- 釜山 慶南 3·1運動史(3·1동지회, 1979) 611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3권 280∼281면
- 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河東郡誌(河東郡誌編纂委員會, 1996) 239·2063면
- 高等警察關係摘錄(慶尙南道警察部, 1936) 2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