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5권(2003년 발간)
경남 하동(河東) 사람이다.
1919년 4월 11일 하동군 화개면(花開面) 정금리(井琴里)의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고 주도하였다.
이곳의 독립만세운동은 먼저 4월 6일 쌍계사 승려인 김주석(金周錫), 학생 정상근(鄭湘根)·양봉원(梁奉源) 등이 주도하여 일어났다. 이들은 거사 당일날 화개시장에서 만세운동을 벌였으나, 일본 경찰에 의해 곧 해산되었다.
한편 4월 10일 밤 이정수는 자신의 집에서 이강률(李康律)·이정철(李正哲)·임만규(林萬圭) 등과 함께 다음 장날인 4월 11일에 독립만세운동을 일으킬 것을 논의하였다. 그의 제안으로 시위에 참가할 것을 권고하는 내용의 문서를 작성하였고, 임문규(林文圭)를 시켜 화개면사무소 앞문에 붙이도록 하였다.
그리고 거사 당일인 4월 11일 정오 무렵, 이정수와 주도인물들은 화개시장에서 운집한 군중들과 만세운동을 하려다가 일본 경찰에 붙잡혔다.
그는 이 일로 1919년 6월 9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고 공소하였으나, 그 해 7월 4일 대구복심법원에서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2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大邱覆審法院, 1919. 7. 4)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5輯 1246∼1247面
- 3·1運動實錄(李龍洛, 1969) 695∼696面
- 河東郡誌(同編纂委員會, 1996) 240·2066面
- 釜山·慶南三一運動史(三一同志會, 1979) 615∼616·1246∼1248面
- 河東獨立有功者功勳錄(秋慶和, 2000) 134∼135·178∼179·315面
- 慶南日報(2001. 2. 1)
- 慶南道民日報(2001. 2. 16)
- 慶南日報(2001. 11. 16)
- 釜山日報(2001. 11.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