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 3. 18 경남 (慶南) 산청군 (山淸郡) 산청면 (山淸面) 에서 동경유학생 (東京留學生) 오명진 (吳明鎭) 의 주도로 ‘민족 (民族) 자결주의 (自決主義) 에 따라 독립운동을 해야 한다’고 결의한 후 산청읍 (山淸邑) 의거 (義擧) 를 동년 (同年) 3. 22 장날에 단행하기로 약정하고 산청면사무소 (山淸面事務所) 등사판으로 독립선언서 (獨立宣言書) , 결의서 (決意書) 및 태극기 (太極旗) 를 약 2천여 매 인쇄하였으며 동지 (同志) 를 규합 하던 중 1919. 3. 21 산청군 (山淸郡) 친일군수 (親日郡守) 홍승균 (洪承均) 의 고발로 다른 주동인물들과 함께 피체 되어 징역 3월을 받은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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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1권(1994년 발간)
경남 산청(山淸) 사람이다.
1919년 3월 산청군 산청면(山淸面)으로 귀향한 동경유학생 오명진(吳明鎭)을 통해 독립운동 의거에 대한 소식을 듣고 민영길(閔泳吉)·신영희(申永熙)·오원탁(吳元卓)·최오룡(崔五龍) 등과 함께 3월 18일 오후 5시에 비밀모임을 갖고 결사대를 조직한 후 3월 22일 장날을 이용하여 만세시위운동을 벌이기로 약속하고 준비를 서둘렀다.
그리하여 산청면사무소 등사판으로 독립선언문, 결의서 및 태극기 2천여 매를 인쇄하여 동지들을 규합하던 중 산청군수 홍승균(洪承均)의 고발로 일군헌병에게 사전에 발각되어 붙잡혔다.
그는 그 해 5월 6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소위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3월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범죄인명부(산청군 산청면장 발행)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3권 316∼31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