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0권(2012년 발간)
경기도 수원군(水原郡) 장안면(長安面)과 우정면(雨汀面)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을 주도하며 시위를 이끌었다.
1919년 4월 차희식(車喜植),차병혁(車炳爀)은 장안면 석포리(石浦里) 구장 차병한(車炳漢) 등을 비롯하여 장제덕(張濟德),장소진(張韶鎭),이영쇠(李永釗) 등과 만세운동 계획을 상의하였다. 2일 오후 9시경 차병혁,이영쇠,윤영선(尹永善) 등이 주동이 되어 덕정리(德亭里) 뒷산에서 횃불을 올리며 대한독립만세를 불렀다. 이 시위는 장안면 각 부락으로 번져 밤새 봉화가 오르며 만세소리가 울려 퍼졌다. 3일 거사 당일, 우정면 책임자 차희식과 장안면 책임자 차병혁,김영세(金永世)는 태극기를 만들어 군중에게 나누어 주면서 시위를 시작하였다. 시위행렬은 장안면 석포리에서 시작되어 조암(朝岩) 장터에 이르자 2,000여 명에 달하였다. 차희식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후 만세를 삼창하였다. 이들은 장안면 사무소로 가서 면장에게 만세를 부르도록 한 후 면장을 앞세워 쌍봉산에 오른 뒤 다시 우정면사무소로 갔다. 이들은 우정면사무소에 도착하여 서류를 불사르고 면사무소를 포위하며 태극기를 휘날리며 만세를 불렀다. 시위 군중은 다시 화수리(花樹里)주재소로 향하였다. 화수리주재소에 도착하자, 시위 군중은 사면에서 주재소로 돌입하였다. 그러나 일본인 경찰부장이 총을 쏘는 바람에 노인 1명이 쓰러지고, 2명이 중상을 입었다. 이에 분노한 군중은 돌을 던지며 저항하였다. 이 돌에 맞아 일본 경찰이 쓰러져 죽자, 군중들은 주재소를 파괴한 후 불을 질러 소각하였다. 3일 뒤 일제는 보복으로 화수리를 완전히 불살라버렸다.
이 시위로 체포된 장제덕은 1920년 12월 9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살인,방화,소요,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2년을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5집 348~376면
- 決定文(京城覆審法院:1927. 2. 24)
- 每日申報(1919. 8. 8)
- 東亞日報(1920. 7. 25)
- 判決文(京城覆審法院:1920. 12. 9)
- 判決文(京城地方法院:1920. 8. 9)
- 決定文(高等法院:1920. 3. 22)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2권 160~162면
-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國史編纂委員會) 20권, 21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