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강원도 화천군 상서면(上西面) 봉오리(峰吾里)에 거주하던 박용구는 1919년 3월 27일 봉오리 이준극(李俊極)의 집에서 마을회의가 개최될 때 구장 이창선(李昌善)이 3월 28일 화천읍내의 장날에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자고 제의하자 이에 찬동하였다. 박용구는 3월 27일 상서면 봉오리·다목리(多木里)·파포리(巴浦里)의 주민들에게 거사 계획을 알렸다. 그리고 박용구는 28일 아침 나석화 등과 함께 봉오리와 파포리 사이의 산기슭에 모여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또한 300여 명의 주민들과 함께 산서면에 나아가 면사무소를 파괴하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전개하였다.
시위 후 체포된 박용구는 1919년 9월 1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소요죄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8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京城地方法院:1919. 7. 5)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2권 552~553면
- 判決文(京城地方法院:1919. 9.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