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1920년 6월 경기도 수원군(水原郡)에서 구국민단(救國民團)을 결성하여 구제 부장(救濟部長)에 선임되어 회원을 모집하였고, 대한민보(大韓民報) 등의 배포에 관해 수차례 협의하였으며, 동년 8월 상해로 망명을 시도하다 체포되어 순국하 였다.
1919년 3월 소위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종로경찰서(鍾路警察署)에 15일간 구류를 당하였다.
1920년 6월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京城女子高等普通學校) 3학년 재학 중 경기도 수원 서호(西湖) 부근에서, 수원 삼일여학교(三一女學校) 교사 차인재(車仁載)의 소 개로 임순남(林順男,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 2년생)·최문순(崔文順, 이화여자고등 보통학교 2년생) 등과 함께, "제1. 일한합병에 반대하여 조선을 일본제국 통치 하에 서 이탈케 하여 독립국가를 조직할 것, 제2. 독립운동을 하다가 입감되어 있는 사람 의 유족을 구조할 것"의 2대 목표를 표방하는 비밀결사 구국민단(일명:血復團)의 결성에 참여하였다.
이후 동년 7월경까지 수원 읍내 삼일학교에서 구국민단 부단장 이득수(李得壽) 등과 수차례 회합하여 <대한민보>·<독립신문(獨立新聞)> 등의 반포를 담당하기로 서약하고, 또 기회를 보아 상해로 가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간 호부가 됨으로써 독립운동을 도울 것을 맹서하였다.
상해 임시정부와 연락하기 위하여 동년 8월 9일 수원을 출발하여 상해로 향하다가 경성에서 체포되었다.
1921년 4월 12일 경성지방법원(京城地方法院)에서 소위 1919년 제령(制令) 제7 호(政治에 관한 犯罪處罰의 件) 위반으로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을 받고 순국하 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2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新韓民報(1920. 9. 23, 9. 30, 1921. 6. 16)
- 獨立新聞(1921. 4. 30)
- 每日申報(1920. 11. 13, 1921. 4. 13)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5집 377~378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7) 제9권 218, 340면
- 判決文(京城地方法院:1921. 4. 12)
- 東亞日報(1920. 8. 17, 1921, 4. 6, 4. 13)
- 朝鮮日報(1920. 8. 20, 1921, 4. 11, 4.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