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권(1986년 발간)
1919년 3월 26일부터 3월 28일까지 홍 면(洪면) 등이 계획하여 전개한 화성군 송산면(松山面) 일대의 독립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그는 3월 26일부터 송산면 사강리(沙江里)의 면사무소에서 태극기를 게양하고 1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으며, 사강 장날인 28일에도 홍 면 등과 함께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그는 이날 잠깐 외출하였다가 정오 경에 돌아와 홍종업(洪鍾業)의 집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는데, 1천여 명의 독립만세 시위군중이 모여 있던 뒷산으로부터 총성이 들렸다.
이 때 그는 남양(南陽) 사람으로부터 이 총성이 일본인 순사부장 야구광삼(野口廣三)이 해산명령에 굴하지 않고 계속 독립만세운동을 지휘하던 홍 면에게 가한 발포소리이며, 이 발포로 홍 면이 어깨에 관통상을 입었다는 것을 전해 들었다. 그는 즉시 현장으로 달려갔는데, 이미 야구광삼은 분노한 군중을 두려워하여 사강리 주재소 방향으로 도망하고 난 뒤였다.
이에 그는 홍 면의 동생 홍준옥(洪준玉)·장인 김명제(金命濟)·문상익(文相翊)·김교창(金敎昌)·김용준(金容俊) 등과 함께 추적하여 주재소에 미처 도착하지 못한 야구광삼을 도로에서 포위하였다.
이 때 이태순(李泰順)이 발로 자전거를 차서 넘어뜨리자, 왕광연은 그를 죽이라고 외치고 뛰어서 도망치는 그의 머리를 몽둥이로 쳐서 넘어뜨리고 투석으로 살해하는 등, 격렬하게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어, 1920년 7월 5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소요·살인 및 보안법 위반 혐의로 12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77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2권 165∼167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5권 378∼39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