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훈전자사료관

통합검색
독립유공자 명단보기
 

유공자정보

수형기록
관리번호 4031
성명
한자 南道學
이명 南基彦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액자프레임

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3.1운동 포상년도 1990 훈격 애족장
1919. 3. 2 영동군(永同郡) 매곡면(梅谷面)에서 노천리(老川里), 옥전리(玉田里)에서 3.1운동 거사(運動擧事)주동(主動)하여 동지(同志)들을 규합(糾合)하여 시위 군중(示威群衆) 300여명(余名)과 함께 독립만세(獨立萬歲)고창(高唱)하며 시위(示威)취행(取行)하고 일 헌병(日憲兵) 분견소(分遣所) 앞에서 시위(示威)계속(繼續)하다 왜병(倭兵)에게 체포(逮捕)되어 보안법위반(保安法違反)으로 징역 1년을 받은 사실이 확인됨.
원문보기 한자보이기
  • 고창(高唱) : 노래, 구호, 만세따위를 큰 소리로 부르거나 외침
  • 규합(糾合) : 어떤 일을 꾸미려고 세력이나 사람을 모음.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3권(1987년 발간)

충청북도 영동(永同) 사람이다.

1919년 4월 3일과 4일에 걸쳐 매곡면(梅谷面) 각 지방에서, 안광득(安光得)·임봉춘(林奉春)·장한철(張漢哲)·안병문(安秉文)·안 준(安準)·신상희(申相熙)·김용선(金容善)과 함께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고, 4월 4일 추풍령(秋風嶺)에 있던 일본 헌병분견소로 시위군중과 함께 몰려가서 전후 7회에 걸쳐 독립만세 시위를 하다가 체포되었다. 이해 5월 3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형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5권 1120·1121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3권 95면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도움말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순번 성명 이명 출신지 관련사건
1 남도학 남기언(南基彦) 충청북도 영동(永同) 매곡면 만세시위
본문
1900년 10월 3일 충청북도 영동군(永同郡) 매곡면(梅谷面) 노천리(老川里)에서 출생하였다. 남기언(南基彦)이라고도 불렸다. 1919년 4월 충청북도 영동군 매곡면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전국 각지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안준(安準)·안광득(安光得)·임봉춘(林奉春)·장복철(張復哲)·안병문(安秉文)·신상희(申相熙) 등과 매곡면에서도 만세시위를 일으킬 것을 계획하였다. 안광득이 서울에 갔다가 만세시위를 목격하고 「독립선언서」 1매를 가지고 귀향하면서 만세운동의 추진이 구체화되었다. 이들과 협의하여 밤나무 양묘장 작업에 주민들이 동원되는 4월 2일을 거사일로 잡았다. 이에 각 마을을 다니며 만세운동에 참여할 것을 호소하여 동지들을 규합하였다. 안준·안광득·안병문·장복철·신상희 등은 비밀리에 태극기 400여 매를 제작하고, 「독립선언서」를 등사하였다.1919년 4월 2일 오전 11시경 양묘장으로 가서 작업에 동원된 노천리와 옥전리(玉田里)의 주민 100여 명과 함께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태극기를 흔들면서 행진을 시작하였다. 면사무소로 이동하여 면장과 직원에게 독립만세를 먼저 부르게 하고 함께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 과정에서 만세시위대의 규모가 확대되어 황간면(黃澗面)으로 진출하려 하였으나, 일본 경찰과 대치하다가 해산하였다.다음 날인 4월 3일에도 주도자들과 함께 마을을 다니며 만세시위를 계속하였고, 노천리에서는 일본인에게도 독립만세를 부르게 하였다.4월 4일에는 오전 11시경 약 800여 명의 주민과 함께 태극기를 앞세우고 면사무소로 이동하여 앞마당에서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매일 계속되는 매곡면의 만세시위에 추풍령헌병분견소 헌병들이 진압에 나섰다. 이때 일본 헌병에 체포되어 추풍령으로 연행되었다. 이에 분노한 약 150명 주민들은 추풍령까지 헌병들을 뒤쫓아 갔으나 구금자를 구출하지 못하였다. 이에 주민들은 헌병분견소의 창고에 불을 질러 전소시켰다.4월 6일에는 안준·안병문 등이 구금된 인사들을 구출하기 위해 주민 약 300여 명과 함께 추풍령헌병분견소로 행진하였다. 이들은 구금된 인사들의 구출을 시도하였으나 일본 헌병의 진압으로 해산하였고, 주도자 대부분이 붙잡혔다.1919년 4월 23일 공주지방법원 대전지청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함으로써, 그 해 5월 3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원판결 취소 후 징역 1년을 받았다. 다시 상고하였으나, 같은 해 7월 5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면서 옥고를 치렀다.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수형기록

도움말
수형기록
순번 종류 죄명 처분(주문) 판결기관 판결일 제공
1 판결문 보안법위반 징역 1년(원판결 취소) 경성복심법원 1919-05-31 국가기록원
2 판결문 보안법위반 상고 기각 고등법원 1919-07-05 국가기록원

묘소정보

도움말
묘소정보 1
묘소구분 묘소명 소재지
국립묘지 대전현충원 대전광역시 유성구
국립묘지 안장자 위치정보 시스템 바로가기

관련 현충시설 정보

도움말
관련 현충시설 정보
순번 종류 시설명 소재지
1 비석 영동 3·1운동 기념비 충청북도 영동군
2 3·1독립운동 기념탑 서울특별시 중구
3 비석 3·1운동 의거 기념비(영동) 충청북도 영동군

감사의 글 Total 0
목록 개수

인쇄 목록
  • 본 사이트 자료 중 잘못된 정보를 발견하거나 사용 중 불편한 사항이 있을 경우 알려주십시오.
  • 이용자의 참여가 사이트 가치 향상에 큰 도움이 됩니다.
  • 하단의 '오류신고목록'을 이용하시면 신고 내용의 적용여부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오류 신고 시, 개인정보 입력은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 독립유공자 공적조서는 정부포상 결정당시의 ‘공적조서’를 공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며,
  • 독립유공자 공훈록은 공적조서상 근거정보를 기본바탕으로 전문가의 원고집필을 통해 발간된 책을 온라인으로 제공하는 것입니다.
  • 따라서, ‘공적개요(공적조서)과 공적내용(공훈록)’은 원칙적으로 수정불가하며,
  • 다만, 온라인으로 제공되는 기본정보(성명, 생몰일자, 본적지)에 대한 사항은 ‘오류신고’를 통해 신청 가능합니다.
  • 하단의 '오류신고목록'을 이용하시면 신고 내용의 적용여부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오류 신고 시, 개인정보 입력은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페이지 별 오류신고
화면(사료)위치 독립유공자 공적정보 > 남도학(관리번호:4031) 오류 유형 *
오류 제목 *
오류 내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