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3권(1996년 발간)
충남 공주(公州) 사람이다.
그는 1919년 4월 1일 충남 공주군 정안면(正安面) 석송리(石松里)에서 이기한(李綺漢)을 중심으로 전개된 독립만세 시위운동에 참가하였다.
공주에서는 3월 12일 공주읍의 장날에 만세시위를 벌이려다가 일제의 탄압에 의해 저지당한데 이어 유구 장날인 3월 14일에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정안면에서는 4월 1일 유림(儒林)인 이기한과 이병억(李秉億) 등이 석송리 주민들을 이끌며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황타관은 이 때 만세시위에 참가하였으며, 시위대의 선봉에 서서 면소재지인 광정리(廣亭里)로 향하여 면사무소에 이르러서는 김삼룡(金三龍)·윤원식(尹元植)·김오룡(金五龍) 등 젊은 청년들과 함께 삽·지게막대기 등으로 면사무소 벽을 무너뜨리고 게시판과 창·유리문 등을 부수었다.
이들은 시위를 저지하기 위해 공주에서 출동한 일경과 대치하면서 4월 3일까지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그는 이 일로 붙잡혀 1919년 11월 1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신분장지문원지(경찰청)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5집 1144∼115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