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김삼룡은 1919년 4월 1일 충남 공주군(公州郡) 정안면(正安面)에서 독립만세운
동에 참가해 동면(同面) 광정리(廣亭里)에 있는 경찰관주재소를 공격하다 체포
되어 옥고를 치렀다.
1919년 4월 1일 정안면 독립만세운동의 주동인물은 석송리(石松里)에 거주하
며 주민의 존경을 받는 유림(儒林) 이기한(李綺漢)과 이병억(李秉億) 등이었다.
이들은 주민들에게 궐기를 호소하여 석송리 주민들은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15리길을 행진하여 내촌리(內村里)를 경유, 면사무소 소재지인 광정리(廣亭里)에
이르러서는 800여 명의 군중이 되어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장을 누비고 다
녔다. 그리고 경찰관주재소를 공격하여 이를 파괴하였다. 이때 김삼룡은 김오룡
(金五龍)·이돈석(李敦錫)·이월성(李月星)·윤원식(尹元植)·홍점산(洪點山)·황
타관(黃他官) 등과 함께 삽·지게막대기 등으로 담장을 무너뜨리고 유리창, 장
지문, 게시판 등을 부수었다. 여기서 경찰이 발포하여 즉사 1명, 중상 1명, 경상
자 10여 명을 내었다.
시위 후 체포된 김삼룡은 공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2월을 받고 항소하였다.
11월 1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소요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고
공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른 후 1920년 4월 26일 출옥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2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刑事控訴事件簿
- 新韓民報(1919. 12. 2)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5집 1144~1154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3권 109면
- 每日申報(1919. 10. 6)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刑事事件簿
- 受刑人名簿
- 判決文(京城覆審法院:1919. 11.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