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충남 서산(瑞山) 사람이다.
서산군 대호지면 사성리(大湖芝面 沙城里)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이 일대의 도리리(桃李里)와 천의(天宜)장터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주동하였다.
그는 1919년 3월 1일 광무황제(光武皇帝) 인산(因山)에 참관하기 위하여 서울에 갔다가 탑골공원에서의 독립만세시위에 가담한 후 귀향하여 동지 남상락(南相洛)·남상돈(南相敦)·남윤희(南潤熙)·남상은(南相殷) 등과 같이 독립만세운동을 계획 추진하였다. 그리하여 4월 4일 대호지면 도리리와 천의 장터에서 수백명의 군중을 규합하여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시위행진하고 경찰주재소를 습격하여 기물을 파괴하는 등 격렬히 활동하다가 1백 32명의 동지와 함께 일경에 붙잡혔다.
그리하여 이해 10월 24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및 강도·소요죄 등으로 징역 4년형과 벌금 30원을 선고받고 공소를 제기하였으며 12월 2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8월형을 선고받아 1년 4개월여의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1919. 12. 24 京城覆審法院)
- 刑事事件簿(公州地方法院 : 1919年)
- 刑事控訴公判始末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