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전남 여수(麗水) 사람이다.
1919년 당시 김제군 수류면 구월리(金堤郡 水流面 九月里)에 살고 있었는데 이곳에서도 3월 2일에 이미 김제읍 천도교 교구실(天道敎 敎區室)에 독립선언서가 체송되었다.
그러던 중 1919년 3월 20일 오후 김제군 수류면 원평리(院坪里) 장터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그는 일찍부터 비분강개한 뜻을 품고 있었으며, 3월 13일 전주읍시장에 갔다가 그곳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고 돌아와서 만세운동을 일으킬 것을 결심하고 전도명(田道明)·전도근(田道根)·전부명(田富明)·이병섭(李秉燮)·김성수(金成守) 등과 함께 3월 20일 원평 장날을 기하여 거사하기로 결정하였다.
드디어 3월 20일 그를 비롯한 주동인물들은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나누어 주며 큰 태극기를 장대에 달아 들고 장터에 나서서 독립만세를 고창하자 이날 모인 수백명의 군중이 호응하여 만세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여기저기에서 감시하고 있던 일경과 헌병에 의해 군중은 해산되고 그는 주동자로 일경에 붙잡혔다.
그리하여 이해 4월 4일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에서 소위 보안법위반으로 징역 1년형을 선고받았으며, 4월 28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1919. 4. 4 光州地方法院 全州支廳)
- 判決文(1919. 4. 28 大邱覆審法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5輯 1505·1506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3卷 530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