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3권(1987년 발간)
경상북도 의성(義城) 사람이다.
1919년 3월 19일 점곡면 사촌동(點谷面沙村洞)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이곳의 독립만세운동을 김태호(金太鎬)·김태호(金台鎬)·김학배(金鶴培) 등이 각지에서 전개되고 있는 독립만세운동에 자극되어, 3월 18일 김태호의 집에서 회합을 갖고 사촌동 송내동(松內洞)·서변동(西邊洞)·윤암동(尹岩洞) 일대의 주민을 규합하여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하고, 이날 오후 9시경 7백여명의 시위군중을 동원하여 이튿날까지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한편 그는 3월 19일 오후 5시경, 평암동(平岩洞)에서 남오대(南梧大)로부터 주민을 동원하여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할 것을 권유받고, 이날 오후 9시, 20여명의 주민들을 동원하여 사촌동 앞 도로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점곡주재소로 시위행진하여 밤늦도록 주재소를 포위하고 독립만세를 불렀다.
이튿날 새벽 1시, 주재소에서 대기중이던 일본 군경은 무차별 사격을 감행하여 시위군중을 해산시키고, 날이 밝자 검거 작업을 펼쳤는데, 결국 그도 체포되었으며, 이해 4월 17일 대구(大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수형인명부(1919. 4. 17 대구지방법원의성지청)
- 수형인명부폐기목록(의성군 점곡면장)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3권 38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