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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공자정보

수형기록
관리번호 36189
성명
한자 白鳳根
이명 없음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액자프레임

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3.1운동 포상년도 2002 훈격 대통령표창
1919년 4월 5일 경남(慶南) 울산군(蔚山郡) 하상면(下廂面) 병영리(兵營里) 일신학교 앞에서 벌어진 시위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태형(笞刑) 90(度)를 맞은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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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5권(2003년 발간)

경남 울산(蔚山) 사람이다.

1919년 4월 4일부터 6일까지 전개된 울산군 하상면(下廂面) 병영리(兵營里) 일대의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울산 병영에서는 청년회 간부인 양석룡(楊錫龍)과 이현우(李鉉禹) 등이 중심이 되어 동지 규합과 준비에 착수하여 4월 4일을 거사일로 정하였다. 그리고 4월 3일 서리(西里)의 박영하(朴永夏)와 권작지(權作支)의 집에서 비밀리에 독립선언서를 인쇄하고 태극기를 제작하는 등 이튿날의 거사에 대비하여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4월 4일 오전 9시경, 청년회 회원들이 주축을 이룬 독립만세 시위군중은 병영보통학교에 모여 태극기를 꺼내들고 독립만세를 외쳤다. 그리고 인근의 서리·동리(東里)·남외리(南外里)·산전리(山田里) 등을 행진하며 시위운동을 벌였다. 그러나 출동한 일본 경찰의 무력행사로 시위대는 해산하였다.

다음날인 4월 5일 오후 3시경, 군중들은 다시 병영보통학교에 모여 대한독립만세라고 쓴 큰 깃발을 앞세우고 인근지역을 행진하면서 경찰주재소로 향하였다. 이때 시위군중은 1천여 명에 이르렀고, 사태의 절박함을 느낀 일본 관헌은 급히 울산으로부터 13명의 군경을 증원 받아 시위군중과 공방전을 벌였다.

4월 6일에는 병영청년회 간부들과 백봉근·윤학이(尹學伊)·김송근(金松根) 등의 합동 계획으로 전날보다 더 큰 기세로 독립만세를 부르면서 행진하였으나 일경의 탄압으로 많은 사람들이 붙잡혔다. 이때 백봉근도 일본 군경에 붙잡혔다.

그는 이 일로 1919년 4월 22일 울산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를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受刑人名票廢棄目錄(울산광역시 중구청장, 2002)
  • 3·1運動實錄(이용락, 1969) 627∼630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3卷 206面

묘소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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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실 묘소가 재난 등에 의해 사라진 경우

관련 현충시설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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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현충시설 정보
순번 종류 시설명 소재지
1 비석 삼일 충혼비 울산광역시 중구
2 사당 삼일사 울산광역시 중구
3 3·1독립운동 기념탑 서울특별시 중구
4 조형물 병영 3·1운동 기념 조형물 울산광역시 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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