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1권(1994년 발간)
경남 울산(蔚山) 사람이다.
1919년 4월 4일 울산군 하상면(下廂面) 청년회 회원들을 중심으로 전개된 독립만세시위가 중도에서 좌절된 것을 분하게 여기고 이문조(李文祚)·이종근(李鍾根) 등과 함께 김세진(金世鎭)의 집에 피신, 밀회하여 이튿날의 재기를 계획, 문성초·윤학이·최현구 등 동지들에게 연락하여 거사를 준비케 하였다.
4월 5일 이른 아침에 문성초·윤학이의 연락으로 다시 일신학교(日新學校) 부근에 모여 오후 3시에 「대한독립만세」라 대서한 플래카드를 앞세우고 독립만세를 연호하면서 큰 길과 성둑으로 행진하였으며 그곳 주재소를 습격 파괴하는 등 활동을 벌이다가 이를 탄압하는 일군경과 일진일퇴의 공방전이 벌어진 끝에 주동자의 한 사람으로 붙잡혔다.
그리하여 그 해 4월 24일 부산지방법원 울산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4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3·1운동실록(이용락) 627·628·630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3권 206∼208면
- 신분장지문조회회보서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17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