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6권(2006년 발간)
1919년 3월, 만세시위를 주도하기로 결심한 그는 엄주태(嚴柱泰)가 부산에서 입수한 독립선언서와 경고문 등을 전병건(全秉健)·박삼도(朴三道) 등과 함께 엄주태의 집에서 2백여 매를 등사하고, ‘독립만세’라고 쓴 큰 깃발도 만들었다.
당시 그는 양산군청(梁山郡廳) 고용원으로 재직하고 있었는데, 군청의 등사기를 몰래 빼내 독립선언서 등 문서를 등사하는 임무를 맡았다.
모든 준비를 마친 그는 3월 27일 동지들과 함께 독립선언서를 나누어 가지고 양산읍 장터로 나아가 3천여 명의 시위군중에게 독립선언서와 경고문 등을 배포하였다. 이어 장터 한복판에 깃발을 높이 세우고 군중의 선두에 서서 독립만세를 선창하며 장터를 행진하는 등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이로 인해 일경에 체포되어 1919년 5월 28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소위 출판법과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4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大邱覆審法院, 1919. 5. 28)
- 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5권 1218∼1219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3권 212∼21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