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8권(1990년 발간)
경남 창녕(昌寧) 사람이다. 1919년 3·1독립운동 당시 천도교인(天道敎人)이었던 그는 천도교 계통으로부터 거사연락을 받고 장진수(張振秀)·김추은(金秋銀) 등과 함께 독립만세시위를 준비·계획하고, 1919년 3월 13일 창녕군 영산읍(靈山邑)에서 천도교인 23명으로 결사단(決死團)을 조직하였다. 3월 13일 약 400여명의 시위군중을 이끌고 주재소를 포위하고 일인상점을 습격한 그는 출동한 일경(日警)에 의해 붙잡혀 구금되었다. 그 후 대구형무소에서 10개월간 옥고를 치르고 1921년 일본으로 건너가 조도전대학(早稻田大學) 영문과를 졸업한 후 귀향하여 농촌계몽운동에 투신하였으나, 일제의 탄압으로 1938년경 만주로 망명하였다가 광복후 귀향하였다고 한다. 1946년에서 1948년에 걸쳐 마산중학교 초대 교장으로 재직하였으며, 1948년 창녕지구 초대 제헌국회의원에 당선되어 2년간 정치활동을 하다가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납북되었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9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1919. 5. 10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