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경기도 부천(富川) 사람이다. 1919년 3월 28일 부천군 용유면(龍游面)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이곳의 독립만세운동은 용유면 남북리(南北里)에 사는 조명원(趙明元)·조종서(趙鍾瑞)·이재경(李載卿)·이상태(李相台)·최개성(崔開城) 등이 주도하여 일어났다. 조명원·조종서·최봉학(崔鳳鶴)·문무현(文武鉉) 등은 3월 24, 25일 양일간 모여 독립만세운동의 계획을 세웠다. 이때 이들은 만세시위를 조직적으로 전개하고자, 비밀결사 혈성단(血誠團)을 결성하였다. 피로써 독립을 달성하겠다는 굳은 의지 아래 혈성단은 3월 28일을 거사일로 정하고, 자신들이 직접 격문을 작성하는 한편 태극기를 제작하면서 만세시위에 대한 준비를 진행해 갔다. 그리고 이들은 인근의 남북리(南北里)·거잠리(巨蠶里)·을왕리(乙旺里)·덕교리(德橋里) 등을 다니며 동지들을 규합하였다. 이때 이러한 계획을 접한 구길서는 적극 찬동하며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거사 당일인 3월 28일, 관청리 광장에서 150여 명의 군중이 모인 가운데 만세시위를 거행하였다. 이들은 광장 중앙에 태극기를 내걸고, 조명원의 선창으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으며, 구길서는 시위대의 선두에 서서 태극기를 휘날리며 시위행진을 전개하였다. 그는 이 일로 일경에게 붙잡혀, 이해 5월 2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으로 징역 6월을 받았으나, 공소하여 같은 해 7월 19일 경성복심법원에서 태(笞) 90도를 받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6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5輯 313∼315面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