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경기도 부천(富川) 사람이다.
1919년 부천군 용유면 남북리(龍游面 南北里)에 사는 조명원(趙明元)·조종서(趙鍾瑞)·최봉학(崔鳳鶴) 등과 함께 주동이 되어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할 것을 결의하였다.
이들은 1919년 3월 23일과 24일에 모여 독립운동단체인 혈성단(血誠團)을 조직하여 3월 28일 거사하기로 결정하였으며, 그 준비를 위해 광목으로 대형태극기를 하나 만들어 그 기에 혈성단 주도자 4명의 이름을 쓰고 만세운동 격문을 인근동리에 배포하였다.
그는 3월 28일 관청리(官廳里) 광장에 동리 주민 150여 명이 모인 가운데 태극기를 중앙에 세우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시위운동을 벌이다가 주동자로 현장에서 일경에 붙잡혔다.
그리하여 이해 7월 19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상고하였으나 9월 27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2卷 152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5輯 313∼315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