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1919년 3월 23, 24일 경 조명원(趙明元)·조종서(趙鍾瑞)·문무현(文武鉉) 등과 3월 28일 경기도 부천군 용유면 관청리 광장에서 독립만세운동을 벌이기로 계획하고, 그 준비기관으로 혈성단(血誠團)을 조직하였다. 그리고 시위에 사용할 태극기를 제작하고, ‘조선독립운동을 벌일 것이니 28일 관청리 광장에 모이라’는 취지의 선전문 80매를 만들어 용유면의 동리에 배부하였다. 거사 당일인 28일에는 관청리 광장에 모인 150여 명의 군중 및 이난의(李蘭儀)가 인솔하는 시위대와 합류하여 군중을 이끌고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시위 후 체포된 최봉학은 1919년 5월 22일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고, 동년 7월 19일 경성복심법원에서 항소기각, 동년 9월 27일 고등법원에서 상고기각 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8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京城地方法院:1919. 5. 22)
- 判決文(京城覆審法院:1919. 7. 19)
- 判決文(高等法院:1919. 9. 27)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5집 313~31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