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0권(2012년 발간)
경남 창원군(昌原郡) 창원읍(昌原邑) 장터에서 열린 만세운동에 참여하여 만세시위를 하였다.
1차 시위는 1919년 3월 23일 창원읍 장날이었다. 이날 오후 2시 20분경 6,000~7,000여 명의 장꾼이 모여들자, 주동자들은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에 군중들도 호응하여 독립만세 함성이 진동하였다. 그러나 이 시위는 출동한 일제 경찰에 의해 31명이 붙잡히면서 해산되었다.
이때 체포를 면한 일부 주동자들은 4월 2일 장날을 2차 거사일로 정하고 비밀리 연락을 취하였다. 거사 당일 오후 3시 많은 장꾼들이 몰려들자, 청년 15명은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면서 시위행진을 하였다. 이에 상인들도 호응하여 철시(撤市)하고 합세하면서 대규모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에 일본 경찰은 마산으로부터 증원병력을 얻어 총칼을 휘두르며 난타하여 시위군중을 해산시켰다.
이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힌 김창실은 1921년 5월 9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每日申報(1919. 5. 29)
- 新韓民報(1919. 9. 6)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3권 241~243면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