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김문유는 경기도 연천군(漣川郡) 백학면(百鶴面)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연천군에서는 1919년 3월 21일부터 만세시위가 일어나 4월 10일까지 연천읍내 백학면·두일·장터·마전·삭영·적성 등지에서 계속되었다. 백학면 두일리(斗日里)에서는 미산면(嵋山面) 석장리(石墻里)에 사는 조우식(趙愚植)이 주동이 되어 3월 21일 두일 장날을 기회로 하여 장에 모인 군중과 같이 만세시위를 하였다. 그리고 정현수(鄭賢秀)와 함께 면장을 데려다 만세를 부르게 했다. 구금용(具今龍)은 소방용 경종(警鍾)을 울려 군중을 모이게 하고, 조우식·정현수 등이 군중을 지휘하여 백학면사무소로 들어갔다. 면사무소 직원에게 전부만세를 부르라 하였으나 응하지 않으므로 군중은 돌을 던져 면사무소 일부를 파손시켰는데 이때 군중은 200명을 넘었다. 이들은 저녁에 미산면 마전리(麻田里)로 행진하여 태극기를 휘날리며 학교 앞에서 대한 독립만세를 높이 불렀다.
이날 백천기(白天基)는 백학면 통강리(通江里)에서 주민 60여 명을 인솔하고 마전리 헌병주재소로 달려가 조우식이 지휘하는 시위대와 합류하였다. 이때 김문유는 이낙주(李洛周)·홍순겸(洪淳謙)·김복동(金復東)·한상혁(韓相赫) 등과 함께 주동인물로서 합류하였다.
시위 후 체포된 김문유는 5월 2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소요·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고 항소하여, 7월 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그는 다시 항소하였으나 9월 18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3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京城覆審法院:1919. 7. 7)
- 判決文(高等法院:1919. 9. 18)
- 刑事控訴事件簿
- 判決文(京城地方法院:1919. 5. 22)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5집 560~562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2권 199~200면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