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권(1986년 발간)
경기도 연천(漣川) 사람이다.
1919년 3월 21일 조우식(趙愚植)·정현수(鄭賢秀)·백천기(白天基) 등과 함께 백학면 두일리(百鶴面斗日里)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만세시위를 주동하였다.
그는 이날 두일리 장터로 나아가 2백여 명의 시위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며 장터를 행진하던 중, 정현수가 면장 윤규영(尹圭榮)을 데기로 나오자, 함께 독립만세를 부르도록 요구하며 구타하였다.
이어 시위군중과 함께 부근의 면사무소로 가서 면서기들에게도 같이 독립만세를 부르도록 권유했으나 불응하자, 건물 일부를 투석으로 파괴하였다.
이 때 일본 헌병이 출동하여 제지하였으나 굴하지 않고, 이날 밤 미산면 마전리(嵋山面麻田里)에 있는 향교로 가서 태극기를 앞세우고 독립만세 시위를 전개하다가 체포되었으며, 이해 9월 18일 고등법원에서 징역 1년 6개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2권 199∼200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5권 559∼56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