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0권(1993년 발간)
충북 진천(鎭川) 사람이다.
1919년 4월 2일 진천군 만승면(萬升面) 광혜원리(廣惠院里)에서 윤병한(尹炳漢)·정관옥(鄭寬玉)·오은수(吳殷洙) 등과 같이 장날에 독립만세 시위를 일으키기로 계획하였다. 그는 회죽리(會竹里) 일대의 면유림(面有林)에 식수(植樹) 작업중인 300여명의 주민들을 규합하는 한편, 태극기를 많이 만들어 다음날인 4월 3일 광혜원장터에서 시위군중 2,000여명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면서 시위하다가 주동자의 한 사람으로 붙잡혔다.
이해 5월 13일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에서 소위 소요 및 출판법 위반 등으로 징역 8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3권 69·70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5집 1087∼108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