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3권(1987년 발간)
충청남도 공주(公州) 사람으로 천도교인(天道敎人) 이다.
그는 교주인 손병희(孫秉熙)가 서울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일으키고 체포된 사실을 알고, 자기 고향의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게 되었다.
1919년 3월 14일 공주군 신상면(新上面) 유구(維鳩)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오후 4시경 30여명의 시위군중 선두에 서서, 모자를 벗어 흔들며 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이필규(李弼珪)·박병문(朴炳文) 등의 동지가 이에 가담하고 시위군중은 500여명으로 늘어나서 더욱 드높이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그러나 곧 출동한 일본 경찰에게 시위가 제지당하였으며, 주동자인 그는 순사보 박용진(朴龍珍)에 의하여 경찰주재소로 연행당하였다. 그가 연행되자 시위군중은 주재소를 파괴시키는 등 더욱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그는 결국 이해 10월 16일 고등법원에서 징역 2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3권 108·109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5권 1141∼114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