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6권(2006년 발간)
1919년 3월 14일 충남 공주군(公州郡) 신상면(新上面) 유구시장(維鳩市場)에서 전개된 만세시위는 천도교 교도인 황병주(黃秉周) 등의 주도로 계획되었다. 황병주는 손병희가 서울에서 독립운동을 계획하다 일경에 체포된 사실을 알고 고향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기로 결심하고 유구장날인 3월 14일을 기하여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하였다. 주도자들은 이날 오후 4시경 장터로 나가 약 30여 명의 주민들 앞에 서서 독립만세를 선창하고 모자를 벗어 흔들며 동참을 권유하였다. 이에 주민들이 호응하여 독립만세를 따라 불렀다. 시간이 흐를수록 시위군중은 증가하여 5백여 명으로 늘어났다.
이우상은 이날 만세시위에 동참하여 독립만세를 부르며 장터를 시위 행진하였다. 그런데 이때 일본인 순사 다카야마[高山]가 출동하여 시위대를 제지하며 해산을 명령하였다. 시위대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 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불렀다. 그러나 다카야마 순사가 주도자인 황병주를 경찰관주재소로 연행해 가자 분노한 시위군중은 경찰관주재소로 몰려가 동지의 석방을 요구하며 격렬히 항쟁하였다. 박준빈(朴準斌)은 주재소로 들어가 황병주의 석방을 요구하며 다카야마의 가슴을 내질렀고, 그는 분노한 군중들과 함께 주재소에 돌을 던지고 몽둥이로 현관을 때려 부수는 등 항쟁을 주도하였다.
그는 이로 인해 일경에 체포되어 1919년 6월 16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및 소요죄로 징역 6월에 벌금 30원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5권 1141∼1144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3권 108∼10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