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3권(1987년 발간)
충청남도 서천(舒川) 사람이다. 1919년 4월 29일 송기면(宋箕勉)이 주도하여 일으킨 마산면(馬山面) 신장리(新場里) 장터의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이날 오후 1시경 그는 신장리 장터에서 2천여명의 시위군중과 함께 송기면의 지휘아래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었는데, 이때 출동한 일본 경찰이 주동자 송기면과 유성렬(劉性烈)을 잡아 경찰출장소로 연행하였다. 이에 그는 양재흥(梁在興)·박재엽(朴在燁)·김인두(金印斗) 등과 합세 수백명의 시위군중을 지휘하여 경찰출장소로 몰려가서 창문 유리와 기물을 파괴하며 강제로 연행 당한 송기면 외 6명의 동지를 탈출시키고 계속 시위를 하였다. 이에 일본 경찰이 발포하여 양재홍 등이 흉탄에 맞아 부상하자, 그는 『나도 쏘아 죽이라』고 순사보 이한규(李翰圭)에게 대들다가 체포되었다. 그는 이해 10월 9일 고등법원에서 징역 3년 6월형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3권 129·130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5권 1171·1172·1173·1175·11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