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0권(1993년 발간)
충남 서천(舒川) 사람이다.
1919년 3월 29일 서천군 마산면(馬山面) 신장리(新場里)에서 장날을 이용하여 기독교인들이 주도한 독립만세 시위운동에 참가하였다. 그는 송기면(宋箕勉)·유성렬(劉性烈)·이근호(李根浩)·임학규(林學圭) 등과 함께 장날인 이날 오후 1시경 장터에 모인 2,000여명의 시위군중에게 태극기를 나누어주고 송기면이 높은데 올라서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다음 유성렬과 같이 선두에 서서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선창하니 이에 따라 군중들도 만세를 부르며 시위를 하였다. 이때 시위를 저지하기 위해 출동한 일경에게 붙잡혔다.
같은 해 5월 19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및 소요 등으로 징역 1년형을 선고받아 공소하여 7월 26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이 부분 취소되었으나 징역 1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1919. 5. 19 공주지방법원)
- 판결문(1919. 7. 26 경성복심법원)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3권 128∼130면
- 3·1운동실록(이용락) 474·475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5집 1171∼117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