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충남 서천(舒川) 사람이다.
서천군 마산면 신장리(馬山面 新場里)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이곳에서 송기면(宋箕勉) 등과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29일 신장리 장날에 대규모의 만세시위운동이 일어났다. 이 운동은 처음에는 독립만세운동으로 벌어졌고 다음에는 피검자 구출운동으로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그는 이날 오후 1시경 송여진(宋如眞) 등과 함께 수백 명의 군중을 규합하여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고 경찰주재소를 습격하는 등 배후에서 시위군중을 격려 지휘하다가 일경에 붙잡혔다.
그후 5월 19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소요 및 보안법 위반 등으로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고 7월 26일 경성복심법원과 10월 9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1919. 5. 19 公州地方法院)
- 判決文(1919. 7. 26 京城覆審法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3卷 128∼130面
- 判決文(1919. 10. 9 高等法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5輯 1171∼1176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