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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공자정보

수형기록
관리번호 1136
성명
한자 朴在燁
이명 없음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액자프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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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3.1운동 포상년도 1990 훈격 애족장
서천(舒川), 마산지구(馬山地區) 독립만세 시위운동의 거사 준비요원으로 가담하여 동면주재소를 습격 기물파괴 등 활약하고 3년형을 받은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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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3권(1987년 발간)

충청남도 서천(舒川) 사람이다.

1919년 4월 29일 송기면(宋箕勉)이 주도하여 일으킨 마산면(馬山面) 신장리(新場里) 장터의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이날 오후 1시경 송기면의 지휘 아래 신장리 장터에서 2천여명의 시위군중과 함께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고 있었는데, 이때 출동한 일본 경찰에 의해 주동자 송기면과 유성렬(劉性烈) 등 6명이 경찰출장소로 강제 연행되었다.

이에 그는 고시상(高時相)·양재흥(梁在興) 등과 함께 시위군중을 지휘하여 경찰출장소로 몰려가, 연행자를 석방하라고 요구하며 창문 유리와 기물을 파괴하여 연행 당한 동지를 탈출시켰다. 그리고 출장소 안으로 들어가 일본 경찰을 구타하는 등 격렬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었다. 그는 이해 5월 19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형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3권 129·130면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173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5권 1171·1172면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도움말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순번 성명 이명 출신지 관련사건
1 박재엽 - 충남 서천(舒川) -
본문
1894년 6월 14일 충청남도 서천군(舒川郡) 한산면(韓山面) 송산리(松山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9일 서천군 마산면(馬山面) 신장리(新場里)장터 만세시위에 참여하여 순사주재소 습격을 주도하였다.서천군 마산면의 만세운동은 한영학교(韓英學校) 출신의 송기면(宋箕勉)을 중심으로 기독교계 인물들이 주도하였다. 3월 1일 이후 전국적으로 전개되고 있던 만세운동의 상황을 인지한 송기면은 3월 중순경 기독교계의 이근호(李根浩)·임학규(林學圭)·송여직(宋汝直)·유성열(劉性烈)·이동홍(李東洪)·노형래(盧亨來)·하중호(河重鎬)·유일동(劉一童) 등과 협의하여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이들은 장날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것을 감안하여 인근 신장리장터 장날인 3월 29일을 만세운동 거사일로 결정하고, 3월 28일까지 태극기를 제작하는 등 구체적인 준비를 하였다.3월 29일 오전 11시경부터 송기면 등은 신장리장터로 나와 준비한 태극기를 주민들에게 배포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면서 만세시위를 시작하였다. 장날 시장에 나왔다가 “우리 조선이 자주독립하여 자유를 향유하고 장래의 안락을 도모한다면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라는 송여직 등의 연설을 듣고 공감하여 주변의 주민들과 함께 만세시위에 동참하였다. 송기면 등의 지휘로 만세시위 대열을 형성하고 장터의 곳곳을 활보하며 ‘대한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쳤다. 이에 장날의 만세시위를 경계하고 있던 이한규(李翰圭) 등 일제 경찰이 즉각 출동하여 송기면·유성열·송여직 등 주도자들을 체포하여 연행하였다. 붙잡힌 주도자를 대신하여 이근호와 나상준(羅相俊)이 시위대를 지휘하여 순사주재소로 달려가서 송기면 등의 석방을 요구하며 격렬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으나, 이들도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이러한 일제 경찰의 횡포에 분노한 주민들이 결집하면서 시위대 규모는 불어나 2,000여 명에 이르렀다. 시위대는 여전히 순사주재소 앞에서 연행자들의 석방 요구와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면서 격렬한 시위를 전개하였다. 그리고 체포된 주도자들에 대한 석방 요구가 계속 거절되며 시위대의 분노가 높아지자, 이동홍·고시상(高時相)·양재흥(梁在興)·정일창(鄭日彰)·김인두(金印斗)·이승달李(承達) 등과 함께 “체포 구금된 인사들을 탈출시키기 위하여 출장소를 공격하자”라고 선동하며 주재소 습격을 주도하였다. 시위대 선두에 서서 순사주재소를 향해 돌을 던져 창문과 유리창을 파괴하였다. 주재소 안으로 쳐들어가 책상과 의자 등 기물을 파손하고 일제 경찰들을 구타하였다. 이어 구속된 송기면·유성열·송여직·이근호·나상준 등 붙잡힌 주도자들을 모두 구출하였다.이후 송기면 등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면서 한산(韓山)을 거쳐 서천 방향으로 행진하는 도중 마산면과 한산면의 경계 지점에서 “일제 헌병이 매복하여 있으니 해산해 달라”라는 서천군수 권익채(權益采)의 요청에 울분을 삼키며 만세시위를 해산하고 귀가하였다.이후 만세시위 참여자 색출을 위해 출동한 일제 경찰에 붙잡혀 서천경찰서로 연행되었고, 만세시위 참여와 주재소 습격을 주도하였다는 이유로 재판에 회부되었다.1919년 5월 19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소요로 징역 3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수형기록

도움말
수형기록
순번 종류 죄명 처분(주문) 판결기관 판결일 제공
1 판결문 보안법위반, 소요 징역 3년 공주지방법원 1919-05-19 국가기록원

묘소정보

도움말
묘소정보 1
묘소구분 소재지
국내산재 충청남도 서천군

관련 현충시설 정보

도움말
관련 현충시설 정보
순번 종류 시설명 소재지
1 비석 새장터3·1운동기념비 충청남도 서천군
2 3·1독립운동 기념탑 서울특별시 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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