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3권(1987년 발간)
충청남도 서천(舒川) 사람이다.
기독교인(基督敎人)으로서 평소 일본의 침략에 의하여 국권이 침탈됨에 불만을 가지고 대한의 독립을 염원해 오던 중, 1919년 3월 1일 서울을 비롯하여 전국적으로 독립만세시위운동이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을 듣고, 고향인 마산면(馬山面)의 거사(擧事)를 계획하였다. 4월 23일부터 27일가지 집에서 태극기 200여매를 만든 다음, 이튿날 같은 교인 유성렬(劉性烈)·이근호(李根浩)·임학규(林學圭)를 방문하여 독립만세운동의 취지를 설명하고, 4월 29일 신장리(新場里)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정하였다.
거사일인 4월 29일 동지들과 함께 미리 제작한 태극기를 가지고 장터에 나가, 모여드는 군중들에게 태극기를 나누어주고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할 것을 역설하였다. 2천여명의 시위군중이 모이자, 선두에 서서 태극기를 휘두르며 독립만세를 선창하고 장터를 행진하다가, 출동한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그는 이해 6월 14일 고등법원에서 징역 1년 6월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173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5권 1155·1177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3권 12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