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충남 서산(瑞山) 사람이다.
1919년 그는 충남 서산군 해미면(海美面) 소재 해미공립보통학교(海美公立普通學校) 학생으로 평소 일제의 식민통치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러던 중 3월 24일 하오 7시경 이계성(李啓聖)으로부터 독립만세운동의 권유를 받고 졸업생 이봉이(李鳳伊)·유한종(劉漢鍾)·최흥량(崔興良)과 재학생 장기남(張基南)·양태준(梁泰準)·이기신(李起信) 등에 대하여 면사무소에 가서 대한독립만세를 부르자고 권유하여 밤 11경 유세근(劉世根)·김연원 등 수십 명이 일단이 되어 같이 면사무소 및 읍내 우시장(牛市場)에 가서 스스로 독립만세를 선창하며 만세운동을 벌이다가 일경에 붙잡혔다.
그는 이해 4월 21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유죄판결을 받았고 5월 19일에는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1920년 출옥 후에도 독립운동을 계속하고자 일경의 감시를 피하기 유리한 승려생활을 하면서 법회강연, 대담 등을 통하여 민족정신을 고취시켰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僧侶在籍確認書
- 韓國獨立史(金承學) 下卷 125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3卷 153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9卷 258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5輯 1194∼1196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