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3권(1996년 발간)
충남 홍성(洪城) 사람이다.
그는 1919년 4월 7일 충남 홍성군 장곡면(長谷面)에서 500여 명의 주민을 주도하여 독립만세를 고창하고 항일 시위운동을 전개하였다.
홍성읍에서 3월 7일 만세시위가 일어난 것을 시작으로 홍성의 각 면에서는 만세시위가 불같이 일어났다. 장곡면에서는 4월 4일과 4월 6일에 만세시위가 격렬하게 일어났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상철은 이화춘(李化春)·김동하(金東河) 등과 함께 4월 7일 화계리(花溪里)의 주민을 이끌고 독립선언식과 독립만세를 고창한 뒤 시위행렬을 도산리(道山里) 소재의 면사무소로 향하였다. 면사무소에 이르른 시위대는 면사무소를 습격하여 문 등과 유리창 등을 파괴하면서 식민지 통치의 부당성에 대한 민족적 설움을 표출하였다.
이러한 시위는 다음날에도 이어져, 한상철은 밤 11시에 주민들과 함께 면사무소에서 독립만세를 고창했는데, 이 때 출동한 일경의 총격에 의해 시위군중이 부상을 입거나 붙잡혔다.
이로 인하여 일경에 붙잡힌 그는 1919년 6월 30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에 벌금 30원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형사사건부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5집 1182면
- 홍주문화(홍주향토문화연구회) 제8집 34·4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