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 4. 7 홍성군 (洪城郡) 장곡면 (長谷面) 화계리 (花溪里) 앞산에서 독립만세 (獨立萬歲) 를 고창 (高唱) 한후 (后) 500여명의 시위군중과 함께 장곡면사무소 (長谷面事務所) 를 습격 (襲擊) 하고 4. 8 다시 시위군중 60여명을 모이게하여 동면사무소 (同面事務所) 를 습격 (襲擊) 하여 건물 (建物) , 집기 (什器) 등을 파괴 (破壞) 하며 활동 (活動) 하다 체포 (逮捕) 되어 징역8월형 (月刑) , 벌금 (罰金) 20원 (圓) 을 언도 (言渡) 받았으며 종로경찰서 폭탄 투척 (鐘路警察署爆彈投擲) 에 활동 (活動) 한 윤익중 (尹益重) 의 친형 (親兄) 으로서 독립운동 (獨立運動) 을 지원 (支援) 한 특별 (特別) 활동을 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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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창(高唱) : 노래, 구호, 만세따위를 큰 소리로 부르거나 외침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3권(1987년 발간)
충청남도 홍성(洪城) 사람이다.
1919년 윤기순(尹己順)과 함께 고향인 장곡면(長谷面) 화계리(花溪里)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그는 이날 500여명의 독립만세 시위군중의 선두에 서서, 독립만세를 선창하며 도산리(道山里)에 있는 면사무소와 경찰주재소를 습격하는 등 격렬하게 독립만세시위를 하다가 체포되었다.
그는 이해 10월 18일 고등법원에서 징역 8월형에 벌금 20원(圓)의 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또한 1923년 1월에는 김상옥의 종로경찰서 폭탄투척 운동에 동생 윤익중을 통하여 재정지원을 하기도 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형사사건부(부산지방법검찰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