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경북 의성(義城) 사람이다.
1919년 당시 의성군 안평면(安平面)에 살고 있으면서 대사동(大司洞) 의거에 참여하였다.
대사동 독립만세운동은 3월 15∼19일까지 연일 계속되었다. 그는 3월 18일 밤 계속되는 시위에 전날보다 더 많은 300여명의 군중들과 더불어 대사동에 모여 독립만세를 고창하고 마을을 누비면서 동리 끝까지 시위를 벌였다. 다음날인 19일 낮에는 김옥돈(金玉頓)·이북술(李北述) 등과 함께 4백 여명의 군중과 더불어 대사동에 모여 만세시위를 전개하면서 도리원(桃李院) 장터의 경찰주재소로 몰려가서 투석으로 건물을 파괴하는 등 격렬한 만세시위운동을 벌이다가 일경에 붙잡혔다.
이곳 대사동 의거의 주동인물로 붙잡힌 사람은 모두 30여 명에 달하였다.
그는 이해 5월 10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5輯 1302∼1306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3卷 372∼374面
- 判決文(1919. 5. 10 大邱地方法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