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울산(蔚山) 사람이다. 1919년 4월 8일 경남 울산군 온양면(溫陽面) 남창리(南倉里) 장날 만세시위를 선두에서 지휘하며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 4월 4일과 5일에 걸쳐 울산 병영에서 만세시위가 크게 일어나자, 여기에 고무받은 고기룡 등 청년들은 빠른 시일내에 만세시위를 거행할 것을 결의하고, 4월 8일 남창리 장날을 거사일로 정하고 동지들을 규합하였다. 평소 항일의식이 투철하던 고기룡은 만세시위의 계획에 주동적으로 참가하였다. 고기룡은 동지들과 함께 거사에 필요한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제작하는 한편, 거사 당일인 4월 8일에는 미리 준비한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이른 아침 남창리 장터에 도착하여 거사를 진행해 갔다. 거사 시각인 오후 4시가 되자 그는 동지들과 함께 장터 복판에서 준비한 태극기를 장꾼들에게 나누어 주며,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함으로써 만세시위를 주도해 나갔다. 그리하여 장터에 모여 있던 수백명의 군중이 호응하면서 남창리의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만세시위에 당황한 일경은 총을 쏘며 시위대를 해산시키는 한편 주도, 인물들을 붙잡았다. 그러나 일경의 포위망을 피한 고기룡·이용락 등은 커다란 광목지에 '대한독립만세'라 쓴 깃발을 앞세우고 다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고기룡은 만세시위대의 선두에서 활동하다가 현장에서 일경에 붙잡혀, 이해 6월 4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8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3·1運動實錄(李龍洛, 1969) 8∼11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3卷 209·210面
-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國史編纂委員會) 別集 第1輯 159面
- 慶尙日報(1984. 8. 3)